요즘 Wind TV판이 방영되는 걸 기념해서 PC판을 플레이해보고 썼던 감상을 올려 봅니다. 개인적으로 꽤 괜찮게 생각하는 게임인지라… ^^ 아무튼 2003년 초 무렵에 쓰여진 글이라는 걸 감안해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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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nd – a breath of heart 는 minori의 BITTERSWEET FOOLS에 이은 2번째 작품입니다. 그 이전 minori는 동인 게임 등을 제작하기도 했습니다만, 말 그대로 기업으로서의 작품은 Wind가 2번째였던 것이죠. 현재 전격 대왕에서 ‘GUNSLINGER GIRL’을 연재하고 있는 아이다 유(相田 裕)씨가 캐릭터 디자인을 맡은 이 BITTERSWEET FOOLS는 한국에서는 제대로 알려지지도 않고 잊혀졌습니다. 물론 minori라는 회사의 지명도 또한 형편없었습니다만, Wind 의 경우는 발매 전부터 그럭저럭 사람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했었습니다. 바로 신카이 마코토(新海 誠)씨가 제작한 프로모션 동영상 덕분이었습니다.
게임 회사의 동영상 등을 만들다가 개인 제작 애니메이션을 만들겠다는 생각을 하고 ‘그녀와 그녀의 고양이’, ‘별의 목소리’ 등으로 여러 영화제에서 수상하고 현재는 신작 구름의 저편, 약속의 장소를 제작중인 신카이씨는 그 경력이나 작업 방식, 작품의 특이함 덕에 별의 목소리 이후 한국에서도 상당한 지명도를 갖게 되었습니다. 전작 BITTERSWEET FOOLS의 오프닝 동영상을 만들기도 했던 그가 Wind의 프로모션 동영상을 제작했다는 사실 덕에 게임에 대한 얘기도 한국에서 조금씩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일단 신카이씨가 제작한 1부, 2부 오프닝(프로모션은 1부 오프닝과 몇몇 컷을 제외하면 사실상 동일합니다.)은 결론부터 말하면 확실히 이목을 끌만한 것이었습니다. 특히 하늘의 묘사에서 강조되는 특유의 색감과 투명하듯이 맑은 분위기 라든지 주변의 흔한 사물의 묘사, 3D 그래픽을 이용한 배경과 옵젝트, 그리고 연출 등 신카이씨 특유의 분위기가 확실하게 보여지고 18금 게임의 오프닝으로서는 손가락으로 꼽을 만한 수작이었습니다. 물론 보컬도 개인적으로 일정 수준 이상이었다고 봅니다. 하지만 게임에서 오프닝이 멋진 것은 그 자체로서 플러스 요인이긴 합니다만 그것으로 끝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멋진 오프닝이라는 것은 게임에 대한 기대요소를 갖게 하고 그건 전체적으로 보면 핸디캡으로 작용할 수도 있는 것이니까요. 일단 동영상 얘기는 접어두고 다른 부분에 대해 얘기해 보겠습니다.
일단 게임의 형식을 제작사는 인터랙티브 노벨이라고 말합니다만, 흔히 볼 수 있는 분기식 어드벤쳐 스타일입니다. 시스템 자체는 평균적이라고 할까요. CG감상, H신 감상, 음악 감상을 지원하고, 게임 상에서 텍스트 스킵, 대사 회상, 오토 클릭, 마우스 휠 등이 작동합니다. 일단 이런 류의 게임에서 필수적인 조건은 모두 갖추고 있는데다 직접 플레이해보고 비교적 쾌적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다만 역시 신생 메이커의 한계인지 패치 파일이 너무 많습니다. 제가 플레이한 초회판의 경우 4개, 통상판 초회생산분이 2개, 통상판 2판 이후는 1개로 뒤로 갈 수록 줄어들긴 합니다만 초회판의 경우 4개의 패치를 해야 한다는 점은 역시 아쉬운 점입니다.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방식은 최근 자주 보이는 스타일로, 각 캐릭터의 얘기들이 모이면서 최종적으로 모든 수수께끼가 풀리는 형식입니다. 시나리오에 자체에 대해선 저는 상당히 만족스러웠습니다. 각 히로인들의 얘기를 풀어나가면서도 전체적인 하나의 틀로 모으는 솜씨는 상당한 것이었고, 힘이 있었다고 느껴집니다.
일단 크게 두 파트로 나뉘어진 이 게임에서 1부는 주인공과 히로인들의 학창 생활과 인간관계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들이 보여집니다. 솔직히 개인적으로는 이 1부만 해도 왠만한 미소녀게임들의 시나리오를 넘는 재미가 느껴졌습니다. 무엇보다 인물들의 캐릭터성이 확실했고, 츠토무와 시코우인이라는 훌륭한 조연 덕이었다는 생각입니다. 다만 1부의 내용 중 상당수가 공통 이벤트라는 점이 상당한 악재로 작용합니다. 게다가 1부의 분량도 상당한 양이라 나중에 가면 지겨워하는 분들도 상당수 보였습니다. 스킵을 한다고 해도 챕터나 신이 통째로 넘어가거나 하는게 아닌 만큼 시간을 상당히 잡아 먹게 되고요.
이런 1부에 반해 2부의 경우 전체적인 비밀들이 풀려나가는 부분인 만큼 분위기가 급격히 변합니다. 마치 1부와 2부 오프닝의 분위기가 완전히 상반되듯이 말이죠. 1부를 플레이하면서 아무렇지도 않게 언급되던 키워드들이 지닌 의미가 밝혀지고 각 히로인들의 시나리오를 클리어하면서 점차 밝혀지는 마을이 지닌 비밀들. 개인적으로 Wind의 시나리오에 높은 점수를 주기에 부족함이 없었다고 생각됩니다. 다만 좀 고개를 갸웃거리게 된 것이 제 경우 미나모-노조미-와카바-히나타-히카리 순으로 클리어해서 비교적 나았다고 생각됩니다만, 미나모-히카리를 처음에 연달아 클리어해버리면 대부분의 내용상 비밀이 밝혀져 버리게 됩니다. 이렇게 되면 타 캐릭터들이 어느 정도 붕 떠버리게 되죠. 어느 정도 비밀을 좀 더 분산해서 구성한다든지, 히카리 루트를 최후에 플레이가능하게 하는게 낫지 않았나 라는 생각도 해 봅니다.
점차 게임을 진행해 나가면 1부, 2부 오프닝과 게임에서의 보여지는 키워드들이 모두 함축된 의미를 가지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아무렇지 않게 보여지는 사물들이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다는 걸 서서히 알게 하는 이러한 수법은 꽤나 마음에 드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모든 시나리오를 클리어하면 이 게임의 타이틀과 부제가 어째서 이렇게 정해졌는지도 알 수 있습니다.
한가지 연출에 대해서 덧붙이자면, 초반부 미나모와 주인공이 어릴 때 헤어지고, 재회하는 부분은 개인적인 베스트 순위에 드는 재회신이었습니다. 사실 이 부분만으로도 개인적 호감이 대폭 상승했을 정도. ^^ 그 외에도 몇몇 인상깊은 장면들이 있긴 합니다만, 이건 네타바레가 될 수 있으니….
이 게임의 히로인들은 사실 독창적이라고 보긴 힘듭니다. 인물 설정들을 살펴보면 다들 어디선가 본 듯한, 그런 설정들입니다. 사실 미소녀 게임에서 인기있을 만한 코드들은 한정되어 있기 마련이고 한 달에도 수없이 많은 게임들이 쏟아져 나오는 지금, 독창적인 캐릭터를 바라는 것은 사치일 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런 점을 감안할 때 제가 게임의 캐릭터들에게 바라는 것은 독창성 보다는 캐릭터성이 확실한가 하는 점입니다. 거의 같은 설정의 캐릭터라고 해도 어떤 캐릭터는 캐릭터의 성격과 특징이 명확하게 인식되고 생동감있는 힘이 느껴지는 반면, 어떤 캐릭터는 설정은 어디까지나 배경 설명이 되어 버리고 마는 경우도 보입니다.
이런 식으로 볼 때 Wind의 등장인물들은 전자라고 보여집니다. 어디선가 보던 설정, 익숙해 보이는 성격이라고 해도 각 인물들의 개성이 자연스럽고 명확하게 인식된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특히 조연으로서 역할을 120% 다한 츠토무-시코우인 콤비는 이 게임에서 필요 불가결한 존재로까지 자신을 인식시켰다는 생각입니다. 특히 츠토무의 경우 잘 만들어져 잘 쓰인 남자 조연이 얼마나 미소녀 게임에 이바지할 수 있나를 보여준 예라고까지 생각됩니다. 시코우인의 경우도 상당히 자신이 할 일을 잘 해주었고, 무엇보다 마음에 드는 조연이 되어 주었습니다.(시코우인의 경우 DC판에서 공략이 가능해졌는데 어떤 식으로 시나리오가 보충되고 변경되었는지 궁금합니다.)
게임상의 그래픽은 개인적으로 만족한 부분이었습니다. 개인적으로 STUDIO S.D.T의 유키 타츠야씨의 그림을 좋아하는 부분도 작용했겠습니다만, 그걸 배제하더라도 이 게임의 그래픽 수준은 높은 점수를 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깔끔하면서도 이야기의 분위기에 걸맞는 CG를 만들어낸 점도 훌륭하고 그걸 적절한 연출과 구도로 임팩트 있게 보여준 능력도 상당하다고 생각됩니다. 일부 CG의 퀄리티가 좀 들쭉날쭉 하는 느낌이 들긴 합니다만 심하게 무너지는 부분없이 일정한 퀄리티를 유지한 것도 좋게 보입니다. 특히 개인적으론 특유의 색감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하늘을 표현하는 짙은 푸른색과 색을 바래게 할 정도로 강렬한 빛의 구도는 상당히 즐거웠습니다. 다만 많은 분들이 지적하듯이 立ち繪가 너무 단순하달지, 퀄리티가 떨어지는 것은 눈에 거슬렸달까요. 그리고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부분에서 이벤트 CG없이 단순히 대사로 처리된 부분이 꽤 있다는 생각이 드는 점도 아쉬운 점이었습니다. 물론 CG 숫자로 볼 때 결코 다른 게임들에 비해 적지 않습니다만 역시 몇몇 부분에서 CG가 추가되었다면 더 낫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습니다. 이런 점들을 제하면 개인적으론 그래픽에 있어 불만은 그리 없었고 만족할만한 것이었습니다.
음악의 경우 사실 제대로 신경써서 듣지 않아서 뭐라 말하기는 힘듭니다. 하지만 게임 음악의 가장 큰 본분은 게임의 분위기를 도와주는 것이고 따로 튀는 음악은 오히려 방해가 될 수 있다는 제 생각으로 판단하면 괜찮았다는 느낌이 듭니다. 하지만 1부 오프닝, 2부 오프닝, 엔딩에 쓰인 3곡의 보컬은 정말 마음에 드는 곡들이었습니다. 어찌보면 이 보컬들이 너무 기억에 남아 BGM쪽의 감상이 남아 있지 않은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물론 영상과 결합된 상호작용 때문에 더 좋게 들리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도 들긴 합니다만, 이 보컬곡 들은 여타 다른 게임들의 곡들에 비해 결코 떨어지지 않는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이 3곡의 풀버전 곡들은 지금도 자주 듣는 곡들이기도 합니다. 다만, DC판의 오프닝 보컬은 영 맥이 빠지는 느낌이 들어 버려서 개인적으로 좋아하질 않습니다. –;)
성우의 경우 꽤나 미스매치가 아닌가 라는 얘기가 이곳저곳에서 보였습니다만, 저 개인적으로는 큰 불만은 없었습니다. 다만 역시 히카리역 성우의 목소리나 연기는 역시 상당한 아쉬움이 남습니다. 배역 상으로 아주 중요한 위치였다는 것이 한층 더 그런 생각을 가지게 만드는군요. 그 외 대체적으로 평이한 연기를 보여주었다는 느낌이었습니다. 그 중에서 카스미역이 제 역할을 잘 해주는 연기였다는 생각이고, 미나모의 경우는 미스매치다 라는 평도 많지만 저 개인적으로는 꽤 괜찮지 않았나 라는 생각입니다. 2부에서 그 주인공에게 쏘아대는 기관총 대사 부분이 마음에 들어서 그런지도 모르겠습니다만… ^^; 아무튼 미나모의 경우 1부 플레이하면서도 개인적으로 그다지 위화감을 느끼진 못했습니다. 어쩌면 개인적으로 ‘세상엔 여러 목소리가 있으니…’하고 성우에 대한 문제제기는 거의 할 생각을 안하는 성향 때문일지도…–;
결과적으로 저 역시 반 정도는 신카이 마코토 씨의 오프닝에 끌려 게임을 플레이 했습니다만, 모든 부분에서 실망시키지 않았습니다. 아니, 오히려 기대치 이상으로 충족시켜 주었다는 생각입니다. 개인적인 평가로서는 2002년에 나온 수많은 미소녀 게임들 중 상위 랭크는 확실하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하지만 그보다 제게 있어서 중요한 점은 마음에 드는 게임 하나를 또 만났다는 것이었습니다. 객관적인 평가와는 상관없이 게임 자체가 마음에 드는 경우가 있는데 이 Wind – a breath of heart도 그러한 게임 중 하나로서 제게 자리잡았다고 하겠습니다.
NOT DiGITAL
PostScript. 개인적으로 미나모 만세~ 히카리 만세~ 노조미 만세~ 입니다. ^^ 물론 와카바, 히나타, 시코우인도 좋아합니다만… 팔천세~ 정도로 해둘까요. (먼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