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EINS;GATE에 대해서는 게임을 플레이하던 당시부터 따로 한 번 써야 겠다고 생각했었습니다만, 결국 지금까지 간단히 몇번
언급만 했을 뿐 제대로 된 포스팅을 하지는 못 했습니다. 이젠 슈타인즈 게이트 비익연리의 달링이 바다를 넘어 오고 있는지라 더
이상 미룰 수 없다는 생각에 자판을 두들겨 봅니다.
발매일은 2009년 10월 15일입니다만, 제 개인적인 감각으로는 여전히 막 발매된 그런 느낌이랄까요. 푹 빠졌었기도 하고, 이런저런 스핀오프나 미디어 믹스를 접하다보니 현재 진행형으로 느껴지는 모양입니다.
발매 이전을 떠올려보면 전작이라고 할 만한 카오스 헤드는 좀 독특하다는 평과 호불호가 극단적으로 갈리는 모습이 보여서 해봐도
손해보지는 않겠다 + 좀 느긋해지면 잡아보지 라는 생각으로 차일피일 미루던 상황이었던지라 카오스 헤드는 슈타인즈 게이트의 구입
여부에 영향을 못 준 상태였습니다.(여담이지만 CHAOS;HEAD Noah와 러브 Chu☆Chu!는 지금도 구입한 후 포장도 안
뜯은 게임들 틈에 박혀 있는 상태;;;)
아무튼 상정과학 어드벤쳐 라는 단어에 삘(…)을 받아 마음은 어느 정도 기울어져 있는 상태에서 XBOX Live의 체험판을
받아서 플레이해봤더니 이게 참 좋은 것이더란 말입니다. 그래서 바로 주문. 그 후 발매일이 되자 슬슬 일본 쪽에서 관련 이야기들이
들려오는데 이게 제가 예상했던 수준을 뛰어 넘는 것들이더란 말이죠. 이젠 기반이 약해져버린 텍스트 어드벤쳐에다 발매 기종은
일본에서는 지극히 마이너한 XBOX360. 그런데 발매 후 반응은 말 그대로 불길처럼 번지더란 말입니다. 이런 분위기를 보여주는 것
중 하나가 얼마 뒤 발매된 포르자 모터스포츠 3에서 가장 먼저 등장한 하이 퀄리티 이타샤 데칼은 바로 슈타인즈 게이트를 소재로 한
것들이었죠.(먼산)
자, 이렇게 외부적으로도 점점 분위기가 고조되고 개인적으로도 바로 전달 PS3로 발매된 428을 올 클리어해서 텐션 업된 상태에서
STEINS;GATE를 플레이하기 시작했던 겁니다. 그리고 결과는 뭐… 다들 예상하시는 대로… 🙂
새로운 게임을 접할 때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건 역시 그래픽이겠죠. 현세대 게임기의 고 스펙과 HD 해상도가 텍스트 어드벤쳐나
갸루게에 있어서 얼마나 축복이며 필요한 것인지는 몇 번이고 이야기했던 것 같으니 패스. 이걸 모르겠다면 그냥 주욱 그렇게 살라고
밖에는 할 수가 없죠.
그 외에 먼저 눈에 띄는 건 캐릭터 디자인을 맡은 huke의 화풍과 채색 스타일을 재현한 것이겠죠. 흔히 볼 수 있는 미소녀나
애니메이션 풍과는 거리가 있기에 독특함으로 눈길을 끌기도 하거니와, 어찌보면 병적인 디자인과 어두운 톤으로 구성된 컬러가 작품
분위기와 잘 어울립니다. 사실 huke의 그림은 완전히 취향에 맞는 스타일은 아닌지라 머리로는 괜찮다라는 생각을 하는 동시에 좀
거부감도 있었던게 사실입니다만, 작품과 잘 어울리는데다 캐릭터들에 대한 애착이 커지면서 점점 더 좋아지더군요.
그 외에 스탠딩 CG의 퀄리티나 연출 등은 평이한 수준. 이벤트 CG의 경우 수량이 많다고는 못 하겠지만 필요한 부분에 제대로 쓰이고 있기에 불만은 없네요.
음악은 KID와 5pb의 사운드 스탭으로 많은 수의 연애 어드벤쳐 게임의 음악과 효과음을 담당했던 아보 타케시가 맡았습니다.
지나치게 자기 주장을 하지 않고 게임을 서포트 해주는 사운드트랙의 역할에 충실하면서도 인상에 남는 음악들이었죠. 많이들 좋아하시는
GATE OF STEINER는 저도 좋아합니다, 네.
게임 클리어 하자마자 OST 사야 돼, 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는데 OST 구성이 또 빵빵합니다. CD3장에 가격도 3000엔이 안 되죠. 음악이 마음에 드신 분들은 많이 사줍시다. >.</
오프닝/엔딩의 경우도 마음에 들었는데, 기종 별/미디어 믹스 별로 다른 곡이면서도 분위기는 어느 정도 일관되게 가져가는 부분이 재미있네요. 오프닝 가사가 네타바레 덩어리라는 것도 다들 공통인 것 같고 말이죠.(먼산)
시스템적으로는 오소독스한 텍스트 어드벤쳐 스타일입니다. 화면 하단부에 텍스트창이 떠 있는 바로 그것 말이죠. 전체적으로 봐도
텍스트 어드벤쳐에 평균적으로 들어가 있는 기능들이 들어가 있다는 느낌입니다. 각 기능의 콘트롤러 대응도 무난하다고 보이고…
TIPS라는 것 역시 여타 게임에 많이 보이는 사전+세계관 설명 적인 존재죠.
그 외 다른 게임들과 차별적인 존재라고 한다면 휴대 전화 시스템이겠네요. 기본적으로 휴대 전화가 작품 전개에 있어 빼놓을 수 없는
요소인데, 이걸 이용해서 전통적인 선택지 대신에 통화 유무/메일 회신 유무/키워드 등으로 분기를 부드럽고 깔끔하게 처리하고
있죠. 시나리오와 시스템이 잘 융합됐다고 볼 수 있고, 그 이용이 능숙하다고 할까요. 전개와 큰 상관없는 사소한 메일이나 통화
등도 적절하게 섞여 있고, 캐릭터 간의 친밀도 등을 자연스럽게 보여주기도 하고 말이죠.
위에 그래픽이라든가 음악, 시스템 등에 대해서 썼습니다만 과거로부터 지금까지 텍스트 어드벤쳐를 평가하는데 있어서 핵심이 되는 건
결국 시나리오입니다. 그리고 슈타인즈 게이트가 사람들에게 높은 평가를 받는 이유 역시 가장 큰 부분은 바로 시나리오 때문일
겁니다. 전체적인 구조부터 세부까지 상당히 잘 빠진 시나리오죠.
– 먼저 슈타인즈 게이트의 이야기 구조를 보면 각 히로인 별 개별 루트가 존재하고 엔딩 역시 존재하지만 일반적인 게임에서의
분기와는 좀 다릅니다. 일반적으로 히로인 별 루트가 있는 경우 공통 루트가 끝나는 시점에서 각 개별 루트로 분기가 이루어지고
이것들이 패러렐하게 엔딩까지 이어진다고 한다면 슈타게의 경우 프롤로그부터 트루 엔딩까지 이어진 한개의 커다란 줄기에서 순차적으로 각
개별 루트로 갈라지게 됩니다. 이런 개별 루트는 상당히 짧게 구성되어 있는데, 오카베 린타로의 선택에 의한 또다른 결과를
보여주는 역할을 하고 있는 동시에 ‘배드 엔딩’으로의 역할도 맡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플레이해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슈타게의 이야기는 배드 엔딩을 되풀이하면서 커다란 굴레에서 벗어나려고 발버둥치는 이야기죠. 그런 의미에서 이런 이야기 구조는
플레이어들에게 차례대로 개별 엔딩을 보면서 트루로 도달하도록 하려는 의도가 어느 정도는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실제로 이런 방식이 효율적이기도 하거니와 저 역시 의도하지 않고 플레이했는데도 차례대로 엔딩을 보면서 진행을 했으니까요. 더불어
타임 리프를 이용한 이야기라는 점에서 개별 엔딩을 본 후 다시 돌아가 플레이를 해도 위화감이 들거나 몰입도가 떨어지는 일 없이
이어갈 수 있었다는 점이나, 이런 엔딩의 여운이 오카린의 심정에 대한 동조, 트루 엔딩에 대한 포석으로도 작용한다고 볼 때 이런
구조 자체가 스토리와 융합되어 화학작용을 일으키도록 의도한 것이라는 생각은 타당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 초반에 각종 복선과 떡밥(1회차에서 플레이어가 인지할 수 있는 것, 없는 것 모두)을 뿌리면서 흥미를 유도하고, 이야기가
전개되어 감에 따라 의문점과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과정을 보여주면서 흥미를 유지시킴과 동시에 중반 이후부터는 말 그대로 몰아치는
폭풍 전개를 보여주죠. 정말 마음 같아서는 출근이고 뭐고 계속 플레이하고 싶었던 순간이 한 두번이 아니었…(…) 문체도
간결하고 질질 늘어지는 부분들이 없이 술술 넘어가면서도 설명 부족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점도 좋네요.
– 하드 SF는 아니지만 최대한 모순점을 줄이도록 스토리가 완성됐다는 것 역시 마음에 드는 부분이죠. 이런 스타일의 이야기에서는 앞뒤가 맞아 들어가는구나, 라는 정합성을 플레이어가 느끼게 해주는 게 중요하니까요.
이와 연관된 부분으로 앞에서도 잠깐 언급했지만 복선의 제시와 회수가 능숙합니다. 프롤로그, 오프닝부터 시작해서 중반 이후까지도
어느 시점에 쏠리지 않고 균일하게 복선을 뿌리고 그게 후에 표면상으로 떠오를 때의 쾌감은 상당하죠. 처음엔 무심코 넘겼던 부분을
나중에 알아채게 되는 재미도 커서 전 트루 루트 진행 시에는 일부러 프롤로그부터 다시 진행했습니다.(연출강화팩 DLC를 구입했기에
그걸 써먹어보자는 의미도 있었긴 합니다만)
– 적절한 수준에서의 현실 세계의 연계와 음모론이 사용됐죠. 작품 자체가 일종의 팩션으로 볼 수 있기에 실존 기관을 포함한 각종
명사들이나 사건들이 그대로, 혹은 약간 변형된 형태로 등장하는데 이게 적절한 수준으로 잘 쓰여서 거부감이 들게 하거나 하는 일
없이 부드럽게 녹아들어갔다고 봅니다. 또 이야기 전개상 음모론 역시 등장합니다만 지나치게 음모론에 천착하는 일 없이 스토리 전개를
위해 적절한 수준에서 사용되서 음모론을 좋아하지 않는 저로서도 충분히 재미있게 받아들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현실과의 연계에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 중 하나가 아키하바라와 @채널이겠죠. 아키하바라의 경우에는 일상의
변화/타임리프에 의한 거시적 변화를 보여주기 위한 수단으로 잘 활용됏고, @채널과 넷 슬랭의 경우 그 사용 방식의 세련됨이 눈에
띈다고 할까요. 캐릭터의 특정 요소를 부각시키거나 온라인 커뮤니티와 넷 슬랭 자체에 포커스를 두는 게 아니라, 그러한 것들을
일상적으로 접하고 자연스럽게 사용하는 현실의 현대인들을 표현하는 수단으로 사용됐다는 점에서 말입니다.
– 개인적으로는 선택/행동과 책임, 인과율이 작용하는 이야기라는 점 역시 마음에 들었습니다. 이건 위에 썼던 이야기들에서도 다
나왔던 내용들이긴 합니다만 이런 부분이 오락성으로 작용하는 동시에 마음 한구석을 서늘하게 만들어주는 느낌이 참… 역시 나이가
들면 이런 부분이 어릴 때와는 달리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내친 김에 캐릭터들 관련된 이야기도 해볼까 했는데, 길어졌으니 이 부분은 나중에 쓸지도…. 랄까 이런 건 친구나 지인들과
만나서 떠드는 게 재미있는데 말이죠. ^^; 일단 본편에 대해서 썼으니 나중에 각종 스핀오프나 미디어 믹스에 대해서도 쓰게 될지도
모르겠네요.
아무튼 재미있기도 하고 여러모로 임팩트도 큰 게임이었습니다. 저는 게임이든 책이든 음식점이든 남들에게 추천은 거의 안 하는
주의인데, 이 작품은 언어 장벽만 없다면 시도해보시라고 하고 싶을 정도랄까요. 특히 어린 시절 텍스트 어드벤쳐를 많이 해보셨던
분들이라면 더더욱 말이죠. 이것이 슈타인즈 게이트의 선택인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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