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asite Rex (2000)
칼 짐머
궁리
일상생활 등에서 일반적으로 너무나 당연히, 자주 쓰이는 단어이기에 실제로는 잘 모르는 존재임에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그리고 기생충도 그런 부류 중 하나죠. 오랜 세월 동안 기생충은 음지에 속한 존재였고, 그들에 대한 연구 또한 미비했습니다. 그리고 그나마 연구가 진행되고 있는 지금에 와서도 그들에 대해 인류가 알고 있는 사실은 적은 게 현실입니다.
과학 저널리스트인 필자는 이 책에서 기생충이 단순히 수동적으로 살아가는 퇴화된 생명체가 아님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기생충이 얼마나 이 지구라는 환경에서 성공적으로 진화해왔는지, 숙주의 생식적 능력과 정신상태, 생태계의 형성, 생물의 진화에 어떻게 영향을 미쳐 왔는지 최근 발표된 여러 연구 성과와 이론들을 이용해서 설명하고 있죠.
여러모로 인상깊은 책이었습니다. 무엇보다 저 역시 기생충에 대해 가지고 있던 고정관념이라는게 깨졌다고 할까요. 거기에 더해서 새로운 것, 새로운 분야에 대해 조금이나마 더 알게 된다는 즐거움이라는 게 따라오고요. 무엇보다 저자의 열정이 느껴지고 글 자체도 상당히 편하게 읽어나갈 수 있게 쓰여져 있습니다. 번역 또한 상당히 잘 된 부류라고 생각되고 말이죠.
이 책에서 저자는 기생충이라는 대상을 박멸해야 할 존재로서 보고 있지 않습니다. 물론 기생충은 숙주와 인류에게 고통을 주는 존재이기도 하지만, 또 그 나름대로 기여를 하면서 생태계의 조화를 이루어온 존재라는 것이죠. 예를 들어 88%의 주민들이 감염된 베네주엘라의 빈민촌에는 알레르기 환자가 없지만 상류사회 거주자들은 기생충이 없는 대신 43%가 알레르기 질환을 가졌다 라는 것. 즉 기생충이 사라지자 면역체계가 자신의 몸을 공격하게 된 것이라는 거죠. 개도국 이상의 국가들에서 보이는 장염 역시 원인이 마찬가지고요. 또한 자가면역 질환으로 고치기 힘든 크론병 환자에게 기생충을 먹여 완치시킨 사례 등등.
책 말미에 전개되는, 결국 기생충 역시 이 생태계와 진화의 한 축을 이루는 존재이며, 박멸이 아닌 공존해야할 상대라는 저자의 이러한 주장은 상당한 설득력을 가집니다. 기생충은 숙주 안에서 살아가야만 하는 존재이고 따라서 숙주의 멸종을 바라지 않습니다. 대부분이 별 증상 없이 양식만 축내고, 괴롭히더라도 아예 죽음에 이르르게 하는 일은 드물다는 거죠. 책 마지막에 저자가 인류 또한 지구라는 숙주에 기생하는 기생충이며 자제할 줄 모르는 기생충은 스스로를 파멸시키고 자신의 숙주마저도 그 대가를 치르게 하고 말 것이라고 말하는 대목은 상당히 공감이 가는 부분이었습니다.
NOT DiGITA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