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억울하게 희생된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사실, 고인에 대해 명복만 빌려고 했습니다만 뭔가 토해내지 않으면 참지 못할 것 같아서 쓰게 됐습니다. 아무래도 글이 두서가 없게 될 듯 합니다만, 참아주시길….
사실 이 사건이 터졌을 때 별다른 포스트를 달지 않았던 건 이런 결말을 예상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일부러 안좋은 방향의 글을 굳이 쓸 필요는 없을까 했던 거죠. 사실상 한국으로선 오도가도 못하는 상황이었으니까요. 테러범의 요구 조건을 들어준다는 건 국가들에 있어선 가히 금기와도 같으니까요. 결국 자체적인 판단으로 철군이나 파병 취소를 할 수는 있어도 이런 상황은 말 그대로 막다른 길에 몰린 셈이죠. 무력 진압이라는 것도 테러범들이 특정된 장소에서 있다는 것이 확인될 때나 가능한 거지 이런 상황에선 불가능이었고…. 이번 범행을 저지른 테러범들이 내건 24시간이라는 시간을 볼 때 사실상 시위를 위한 살해를 하겠다는 것으로 보였으니까요.
정말 짜증나는 것은 언론이나 정치가들이 보이는 ‘놀랐다’는 반응입니다. 명분없는 싸움에 끌려갈 때 이런 일이 벌어지리라는 걸 정말 몰랐다는 걸까요. 설사 테러범들이 아니라고 해도 이라크인들의 눈에 한국군이 어떤 식으로 비춰질 지는 뻔한 건데요. 그들에게는 미군을 위해 오는 한국군과 한국의 사정 따위 알 필요도 없고 고려할 필요는 더더욱 없으니까요. 이런 것조차 한 번 생각 안 해 봤다는 걸까요.
결국 이번 김선일씨 사건도, 혹시 있을지 모르는 테러에 대한 위협도 한국 정부와 국민들이 결정한 일에 대해 따라오는 위험부담입니다. 3번째 많은 병력을 파견하는 나라로서 짊어질 위험부담이죠. 물론 한국이 미국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는다면 어떤 장난을 칠 지 모르는게 사실입니다. 그렇기에 파병 반대론자인 저로서도 무턱대고 정부를 몰아댈 수는 없다고도 생각합니다. 하지만, 어떤 식으로든 영향력이 행사될 때 그 결과는 따라오기 마련이고, 그에 따르는 위험도 역시 우리가 짊어지는게 됩니다. 미국이 대신 짊어져 줄리도, 짊어질 수도 없는 거니까요. 결국 미국의 눈치를 보면서 살아야하고, 미국 뒤치닥거리를 해야 하는(혹은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꽤나 많은) 우리 스스로가 짊어져야 하는 짐입니다.
그런데 정말 궁금한 게 있습니다. 미국의 압박 때문에 파병이 어쩔 수 없다는 의견은 그렇다고 치죠. 이라크전에 참전하면 이익이 가득하고 돈이 어쩌구 경제가 어쩌구 한 인간들은 지금 어떤 소리를 할 지 궁금합니다. 아니, 명분없는 전쟁에 기대서 이익을 얻는다는 등의 그런 깨끗한 소리는 접어두고라도 지금 이익을 낼 만한 상황이라고 생각하는지. 자칭 사회지도층이며, 똑똑하다는 사람들이 그들이 같잖게 여기는 일반인도 생각할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해선 어쩌다 쏙 빼먹었는지도 아주 궁금합니다.
보복이니 어쩌니 하는 사람들도 있는 모양입니다만, 어떻게? 물론 우리 입장에서 테러리스트들은 분명한 범죄자입니다. 거기까지는 좋습니다만 어떤 보복을 말하는 건지 궁금합니다. 파병을 한다해도 어차피 한국군의 임무는 치안유지와 재건일텐데요. 테러리스트들이 직접 공격을 해오지 않는 한 접점이 없죠. 전투병을 대거 파병하자? 이 나라는 당신들이 누누히 말했듯이 적대국가가 코앞에 있는 거 아니었습니까? 그런 여력이 있으려나, 돈도 그렇고. 아니, 그 이전에 미국군이 하던 짓을 한국군에게 재현시키자는 겁니까? 그래서 이 땅의 젊은이들을 살인자 겸 희생자로 만들자고? 설마, 민간인에게 보복을 말하는 건가요? 전범을 양산하자고? 단적으로 말해 테러리스트는 우리의 적일 수 있지만, 아랍이나 이라크가 미국의 적일지는 몰라도 우리의 적은 아닙니다. 그걸 잊으면 안 될텐데요. 만약 파병을 하게 된다면 이런 것에 휩쓸리지 말고, 맡은 치안유지와 재건에나 힘쓰면서 아무도 다치지 않고 돌아오는 것이 제가 바라는 겁니다.
테러라는 게 미국이 말하는 것처럼 힘에 의해 근절될까요? 테러는 무력에 의한 공포의 조성이죠. 이라크가 아닌 한국에서도 우린 매일 마주합니다. 굳이 정치적 목표가 아닌 경제적 목표를 위해서도 사용될 수 있고, 정치집단이 아닌 개인이나 그룹, 그 외 경제집단도 할 수 있죠. 다만 편의를 위해 정치적 목적을 가진 것을 칭할 뿐이니까요. 폭탄 테러 같은 것만 아니라 어떤 물리적 위협이나, 시위, 파괴활동과 암살 등도 테러에 속하죠. 이런건 언제 어디서나 발생합니다. 시위현장이든, 정보부의 공작이든, 공공연한 위협을 통해서든.
만약 본격적인 대립문제가 생긴다면 언제 어디서나 테러리즘에 호소하는 자는 나옵니다. 힘으로 해결? 민족이나 종교에 의한 테러리즘은 한쪽이 말 그대로 씨가 마르기 전에는 없어지지 않습니다. 증오와 원한은 스스로 확산되고 재생산되죠. 테러도 마찬가지이고 이는 국가기관의 테러예방행위에도 적용됩니다. 미국이나 영국이 예방행위를 안해서 테러나는 건 아니죠.
테러리즘이라는게 단순하게 범죄라든지, 사상의 차이로 넘겨 버릴 수 있다면 문제는 간단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무력에 의한 호소가 타협시 이익을 증대시킬 수 있는 한 테러리즘의 근절은 불가능합니다. 명분이라는 개념이 존재하는 한도 마찬가지구요. 달랑 무력을 가지고 테러리즘을 종식시킬 수 있다는 건 너무 순진하든지, 멍청하든지 둘 중 하나입니다.
결국 이라크의 테러리즘도 미국과 이라크 둘 중 하나가 씨가 마르던지, 둘이 타협해서 함께 폭탄상자를 억누르고 있는 수 밖에는 없습니다. 어떤 개인이나 신념도 해결할 수 없는 문제고, 이건 무력도 마찬가지입니다. 직면한 문제를 제한적이나마 해결해 나갈 때, 그래서 테러리즘의 가치가 떨어지는 상황이 될 때 테러리즘은 수그러들게 되겠죠. 이런 상황에서 부시행정부의 테러를 조장하는 불장난을 일부러 우리가 따라할 필요는 전혀 없다고 생각됩니다. 뭐 남는게 있다고 테러의 악순환에 몸을 던져야 하겠습니까.
……횡설수설이 길었군요. 다시 한번 돌아가신 김선일씨의 명복을 빕니다. 그리고 현재 이라크에 있는 우리 교민들과 장병들의 안전을 기원합니다.
NOT DiGITA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