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ge&Aska The Best’ 그리고 Japs’ traitors.
위의 친구 안모군의 글과 지인 정수군님의 홈페이지의 글을 보고 문득 평소 생각해 보던 걸 써 봅니다. 아무래도 영향을 받아 버려 안모군의 글과 이리저리 비슷한 부분이 많아 보이는 건 애교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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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세상 좋아졌군’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일본쪽 애니메나 만화, 일본 게임 쪽을 본격적으로 손대기 시작했던 시절이 90년경인데 이 때는 아예 제대로 사회에서 인식조차 되지 않았고, 90년대 중반 무렵만 해도 툭하면 만화책들을 불사르고, 심심하면 왜색문화가 잠입해 들어와서 큰일이라는 기사나 방송이 나오곤 했죠. 일본만화 본다는 소리는 쉽게 할 수도 없고, 괜히 심리적으로 위축되어야만 하던 그런 시절이었습니다.
오죽하면 좀 이름있는 동호회라면 3개월에 한번은 쪽바리 소리로 욕설가득한 글이 포스팅되고, 논쟁만 붙으면 친일파 내지 일본의 앞잡이, 민족의 반역자 소리가 나오는 것이 정해진 수순이었으니… 방송등에서도 물론 이들 ‘반역자’들은 언제나 범죄자 취급이 당연했습니다.
그 때는 어디까지나 주변의 영역이었고, 그렇기에 대부분은 불법과 탈법의 가장자리에서 이루어지던 일들이었죠. 영상물은 어렵게 알게 되는 업자나 지인들을 통해 복제하고, 음반은 밀수, 서적도 밀수를 해야만 했던 시절이었고, 당연히 각종 비디오 게임기나 일본 게임들 역시 밀수품으로만 접할 수 있었죠. 그런 특수 상황에서 벌어지던 이벤트가 ‘상영회’였고, ‘TDK 120 HIFI’라느니, ‘자막기’, ‘LD직더빙’이라든지 각종 비디오 기기들의 명칭(모사의 X7이라든지)등 이젠 사어가 되다시피한 단어들이 일상적으로 쓰이고 있었습니다.
당시는 탄압받는 자의 기분 절반, 반항자의 기분 절반 이랄까요. 앞으로 시간이 지나 새로운 시대가 오고 문화가 개방되면 향유하고 싶은 것들을 마음대로 향유하고, 구하는데 고생 안해도 되고, 가격도 떨어질 거라 믿었던 시절도 있었으니까요. 그 때가 되면 다음 세대들은 일어 공부 안해도 되고, 대본같은 거 필요없고, 비싼 값주고 밀수 음반이나 게임 안사도 되고 라는 생각을 친구들과 나누곤 했습니다.
결국 그렇게 바라던 날은 이제 거의 다 온 듯 합니다. 라이센스판 코믹스는 ‘이런 것 까지 수입할까’ 싶은 걸 포함해 매일 신간이 쏟아지고, 영상물은 아직 백도어가 필요하지만 잘 나오고, 일본어 음성과 글씨를 안 지워도 되고, 이름 안 바꿔도 되고, 게임도 정식 수입되고… 몇시간의 시차로 바로 구해지는 동영상, 넘치는 MP3… 이젠 드디어 일본어 보컬이 들어간 음반도 살 수 있게 됐습니다. 그리고 뻘소리 하는 인간들이 오히려 사이코나 맛간 인간으로 매도되는 상황의 역전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정작 가슴 속에는 공허함이 생겨납니다. 뭣때문인지는 저도 정확히 모릅니다. 왜 이렇게 더러운 기분이 되는지. 초딩 악플, 바보들 뻘소리에 지쳐서 그럴까요? 너무 많은 자극을 받아서 자극에 무뎌져서? 아니면 남들과의 차별성이 사라져서?
어쩌면 이쪽의 초기에 발을 내딛었거나 듣고 본 사람들, 그 흐름을 따라온 사람들에게는 지금의 이런 주변환경은 장애가 되는 건지도 모른다고 친구는 말했습니다. 혹은 이런 상황에 적응 못 하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런 것이 존재하는지도 모르는 게 대부분이었던 예전과 개나소나 다 아는 지금. 돈이 있어도 못 구하는 것이 현실이었던 과거와 돈만 있으면 가능한 현재. 넘쳐나는 미디어로 생각할 시간은 없어지고, 대중화로 진지한 사고는 불필요해지고(혹은 불가능해진 것일지도), 분명 즐기는 사람들의 수는 훨씬 많아졌지만 생각을 나눌 상대는 오히려 찾기 힘들어진 지금. 뭔가 진귀하다고 생각될 만한 것은 찾기 힘들어졌다고 느껴지는 현재는 예전에 내가 정말 그렇게 바라던 게 이것이었나 라는 생각이 들게 합니다.
아무것도 없던 상황에서 길을 뚫던 사람들과 그 길을 다니게 된 사람들은 다를 수 밖에 없는 것이 당연한 것인지도 모릅니다. 정말 그게 아니면 안 되기 때문에 돈을 쳐박던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다를 수 밖에 없을 테지요. 보는 시각도, 느끼는 것도, 생각하는 것도. 만화를 보면서 뭔가를 찾아내려고 했던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의 차이는 분명히 생길 겁니다.
하지만 만화든 게임이든 애니든 엔터테인먼트라는 건 분명합니다. 그걸 어떻게 즐기느냐 하는 건 가치판단의 기준이 되질 못하고, 원래 목적은 즐기는 것이니 어떻게 하든 개인의 자유일 겁니다. 그저 ‘재미있게 즐겼다’라면 충분하다, 라는 것 저 역시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게 생각하기도 하고요. 이 바닥에서 지식을 쌓고 긍지를 가진 분들 역시 그것에 좋아서 즐길 수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겠죠.
그러나 역시 공허함은 남습니다. 뭔가 잃은 것 같지만 그게 뭔지는 모릅니다. 어쩌면 예전에 느끼던 감정들이 어떠했다라는 것 마저 잃어버리게 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거기에 시간에 따른 사람들간의 갭은 점점 더 커져가는 걸로 보입니다. 같은 걸 즐기는 사람들끼리도, 아니 같은 걸 즐기니까 더욱 기본적으로 깔린 생각의 차이에 의해 그 갭은 점점 벌어져 버리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뭐, 어차피 대다수 ‘요즘 사람들’은 과거에 관심도 없을테고 필요성도 못 느낄 테니 상관없을지도요. 하기야 애초에 물려받은 전통같은 건 있지도 않았고, 뭔가 물려줄 필요성도 못 느끼긴 합니다. 세대가 교체되면 바뀌는 것이고, 그것이 잘못된 것도 아니니 고칠 필요도 없긴 합니다.
결국 마이너리티는 끝까지 마이너리티로서 밖에는 존재하지 못하는 걸지도 모르죠. 처음 이 영역에 들어올 때 스스로 자신에게 마이너리티라는 딱지를 붙였기 때문에, 그 범주에서 나가려고 하지도 않고, 나갈 수도 없는 건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그게 오히려 편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꿈이라면 옛날에는 많았고 지금은 그렇지 못 합니다. 그렇다고 포기하는 것도 아닙니다. 이것들이 싫어지는 날이 온다면 훌훌 털어 버리겠지만, 아직은 아닙니다. 이렇게되면 방법은 하나 뿐입니다. 끝까지, 갈 때까지 가보는 수 밖에는요.
NOT DiGITA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