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이 작품을 어릴 때 TV에서 본 후(원래 미니 시리즈였는데 편집해서 영화판을 만든걸로 압니다) 꽤나 머릿속에 남아 있었는데 작년 2월 경에 모 사이트에서 싸게 DVD를 파는 걸 보고 바로 샀었습니다.
일단 팩키징은 일반적인 DVD입니다만 신 인덱스 조차 없다는 건..-_- 적은 양이라도 간단하게 역사적 사실에 대한 브리핑과 전개도 정도가 수록된 소책자가 들어 있다면 좋았겠습니다만 한국에서 이런 걸 바라는게 무리일 듯.
원작은 The Killer Angels라는 소설입니다. 이 작품 이후 영화화된 God and General이나 The Last Full Measure 와 함께 Michael Shaara와 Jeff Shaara의 3부작인 원작을 영화화한 것이죠.
사실 남북전쟁만큼 한국사람들에게 인지도가 높으면서도 자세히 알지 못하는 경우도 드물 듯 합니다. 디테일적인 부분은 더욱 더 그렇고요. 대부분 사람들은 링컨의 노예해방에 남부주들이 개겨서 촉발된 전쟁이고 결국 노예해방을 외친 북부의 승리로 끝났다 라는 정도로 알고 있을 겁니다.
그러나 세상 모든 일이 그렇듯이 그런 단순한 얘기가 아니죠. 개전에 이르기까지의 전개과정도 단순하지 않았을 뿐더러 훨씬 복잡한 정치적 역학관계가 얽혀 있었습니다. 결국 북부의 노예해방은 일종의 선전용 명분 정도에 불과한 것이고 남부로서도 노예해방에 발끈했다기 보다 내정(즉 주 정부와 주민들의 판단)에 간섭한다고 열받은게 더 크니까요. 링컨이 어떤 공화주의를 실천하기 위해 정치적 해결을 포기하고 내전으로 끌고 갔다는게 남부측의 관점이고 요즘의 링컨 평가이기도 합니다만… 그럼에도 역시 링컨은 전후처리라든지 기타 등등을 보면 범상한 인물은 아니죠.
아무튼 이들 작품의 경우 워낙 미국 사고나 미국 역사(특히 남북전쟁)과 밀접하게 관련있는 것들인지라 어느 정도 인지하고 있지 않으면 매력이 반감될 겁니다.(그 이전에 지루해 할지도…) 영화 게티스버그도 간략하게나마 남부에게 있어 최대의 악몽 중 하나인 게티스버그 전투(북부에겐 있어서의 최대 악몽은 프레데릭스버그 전투겠죠)가 벌어진 당시의 3일을 사실적으로 그리고 있으니까요.
개인적으로는 긴 상영시간에 비해 지루하지 않게 볼 수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이 영화의 장점이라면 역시 전투장면입니다. 말 그대로 박력있는 전투신이랄까요. 초반부의 전투들은 비교적 협소한 전투들이 보여집니다만(이거야 실제 전개 자체가 그런 식으로 돌아갔으니) 유명한 피켓의 돌격이 재현되는 마지막 전투는 정말 압권이었습니다. 구식 머스켓들과 전장식 활강포의 박력이란… 특히 당시의 흑색화약 특유의 그 엄청난 연막은 왜 외국에 그리도 흑색화약을 이용한 총기나 화포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는지 이해가 될 듯 합니다. 더구나 4천명 이상의 리인액터들이 참가하고 수십문의 대포가 동원되어 재현된 이 전투는 요즘의 CG로 만들어진 대규모 전투와는 다른 느낌의 장관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남군과 북군 양쪽을 통털어 17만이라는 병력이 참가하고 5만 가량의 사상자가 나온 게티스버그를 완벽히 재현한다는 건 불가능이겠지만, 이 영화는 당시의 전투 양상이나 전장의 모습을 잘 묘사했습니다. 극적인 면을 잘 살리면서도 당시의 전투양상이나 전장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는 느낌도 들구요.
여담이지만 예전에는 이 시대의 전투방식을 보고서 ‘바보들 아냐’라든지 ‘얼어죽을 기사도냐’ 라는 식으로 얘기하는 사람들도 많았지만, 설마 요즘 그런 분들은 없겠죠. -_- 뭐 대부분 이유야 잘 알고 계실테니 말씀 안드리겠지만, 역사상에서 지금 시각에서 보면 아무리 바보같은 짓이라도 당시로서는 타당한 이유를 가진 합리적인 선택인 경우가 대부분이니까요.
인물의 묘사는 대체적으로 지금까지 알려진 모습을 거의 그대로 한 듯 하군요. 롱스트리트나 체임벌린이 역시 인상깊게 등장했고, 리는 역시 카리스마있게 나옵니다. 남군이나 북군,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으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만 역시 남군이 멋있게 나오는 듯 보이는건… ^^ 재미있는 건 워낙 분장을 실존 인물들과 동일하게 해놔서 마틴 쉰 정도는 구별이 가지만 다른 배우들은 전 제대로 못 알아봤습니다. 하기야 누가 롱스트리트를 보고 톰 베린저를 떠올리고 쳄벌레인 대령을 보고 덤앤더머의 멍청이를 생각할지……(먼산)
테드 터너가 남북전쟁 매니아라서 이 영화에 미친 척 돈을 댔다고 하는데 영화를 보면 고개가 끄떡여집니다. 돈이 많이 드는 건 물론이고 이해타산 따지며 찍어서 나올 영화가 아니군요, 이건. 게다가 God and Generals라든지 The Hunry, Merrimack같은 영화를 기획 제작하는 걸 보면… 하기야 테드 터너 라든지, 제프 샤라 등 모두 남부 출신에 남부연맹의 광적인 팬이죠.
게다가 수많은 남북전쟁 동호인들의 협력이 없었다면 정말 촬영하기 몇배는 어려워졌을 영화입니다. 거의 자원봉사 차원으로 뛰어다닌 이 양반들이 아니었다면, 돈도 시간도 훨씬 들었겠죠. 이건 God and Generals나 기타 영화도 마찬가지고요.
전체적으로 남군과 북군을 공평하게 다루고 있습니다만, 후반부에는 남부에 동정적이랄지 친남부적인 모습이 보이는 듯. 이건 제작자들의 성향을 생각하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기본적으로 이런 류의 영화에서 애국심을 고취하려는 듯 보이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만, 그래도 그게 그렇게 두드러지거나 심해서 기분나쁘게 보일 정도는 아닙니다. 사실 미국인이 아닌 이상 두드러기가 날 대사가 꽤 있지만, 어찌됐든 이건 그들의 역사니까요. 미국을 비난하려면 최소한 그들의 역사라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하느니만치 저로선 별 감정이 없군요.
개인적으로는 DVD로 사서 아주 만족할 수 있었습니다. 조금은 오래된 영화지만 전쟁영화에 관심이 많으시거나 이 시대의 전투에 관심이 있으신 분들이라면 한번쯤 꼭 보실만하다는 생각입니다.
NOT DiGITAL
PostScript.
자막은 문제가 좀 있습니다. 다른 건 다 제쳐두고라도 계급의 상하에 따른 말투가 앞장면과 뒷장면이 다른 경우는 문제가 좀 크죠.(ex.암스트롱 장군과 남군 포병대 대령과의 대화) 영화를 보다 헷갈릴 일은 거의 없겠지만, 이렇게 기초적인 부분에서 구멍이 나버리면… -_-
아 그리고 체임벌린 대령의 탈영병에 대한 연설. 이거 이인화가 ‘인간의 길 3권’에서 그대로 표절했습니다. 이런 것들이 소설가에다 대학교수라고 하고 있으니…..
예전에 하이텔 애니동에서 LL1214님의 글에서 월간조선이 게티스버그 취재하며 한국에는 6.25를 다룬 이런 전승지나 영화가 없다 운운 한 적이 있다고 본 적이 있습니다. …..개그하는군요, 월간조선(아니 원래 엔터테인먼트지였지만). 6.25영화를 이런 식으로 그리면(쉽게 말해서 북한군의 장군들이나 북한군이 미화되어서) 아마 가장 앞장서서 돌던지고 ‘빨갱이’운운할 인간들이 말이죠. XXXXX!!~~